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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3) (류시화)

다음은 류시화시인님의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고 내용요약과 제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한 스승이 네명의 제자에게 먼곳에 있는 배나무 한그루를 보고 오라고 하였다.

첫번째 제자는 겨울에 가서 그 나무를 보았고, 두번째 제자는 봄, 세번째 제자는 여름, 네번째 제자는 가을에 가서 그 나무를 보고왔다.

 

서로가 말하는 나무에 대한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스승은 네명의 제자를 불러 각자의 의견이 그자체로 틀리지 않고, 또 전적으로 옳지는 않다고 말했다. 각자가 본것은 그나무의 한계절의 모습에 지나지 않기때문이다.

 

스승은 말했다. "나무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한 계절의 모습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나무와 사람은 모든 계절을 겪은 후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계절의 고통을 겪고 포기한다면 다음계절에 올 아름다움과 결실을 포기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을 평가할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모든 것을 잃고 서리와 얼음으로 뒤덮인 나무일 때, 헐벗은 가지에 바람 소리만 가득할때, 그것으로 자신의 전생애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배나무를 보기 위해 더난 제자들처럼 우리는 모든 계절을 품고 한 계절씩 여행하는 순례자들이다.

 

힌디어에는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 꽃이 피면 알게될것이다' 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독일의 시인 라이너 쿤체는 썼다.

 

'꽃 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인내는 단지 기다림이 아닌 앞을 내다 볼줄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가시를 보고 피어날 장미를 아는것이고, 어둠을 보고 떠오르는 보름달을 아는 것이다. 

 

 

<나는 왜 너가 아닌가>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잘 모른다는 것과 동의어 일때가 많다.

내가 누군가를 안다는것은 그의 모든것을 안다는 것보다 그에 대한 내 편견과 내 판단, 내생각을 굳게 믿는것이다. 

 

섣부른 판단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잃어간다. 

관계가 공허해지는것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의 편견을 깨고 그와 함께 계단 끝까지 내려가는 숙제를 안는 일이다.

 

류시화 시인은 자신이 겪은 한 일화를 말한다. 

 

인도 바라나시에 한 아이가 있었다. 셈을 잘 하지못한 그 아이에게 류시화 시인은 셈을 가르쳐주기로 한다. 

일단 바나나를 사와 물었다. "핀투 내가 너한테 바나나 한개를 주고, 또 한개를 주고, 다시 한개를 주면 넌 바나나가 몇개지?"

 

핀투는 손가락을 연신 접더니 자신있게 말했다 " 네개요"

류시화시인은 다시 설명했다. " 자 내가 지금 너에게 바나나 하나를 줄거야. 그런 다음 하나를 더주고, 또다시 하나를 줄거야. 그럼 너는 전부 몇개지?"

 

핀투는 다시 한번 신중하게 손가락으로 세더니 말했다 " 네개요."

슬며시 화가난 시인은 실망이컸다. 말투와 억양도 격앙되어 있던 탓인지 핀투는 주눅이 들어보였다.

" 괜찮아, 바나나는 네가 다 가져도돼 . 셈공부는 다음에 또 하면돼"

그러자 핀투는 눈물을 닦더니 고개 숙인채, 바지 주머니에서 바나나 하나를 꺼냈다.

시인이 준 세개와 합쳐 네개였던것이다. 

 

티베트에는 앉자마자 설법하는 사람은 스승으로 따르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그 사람을 진실로 이해하지 않으면 가르침은 강요에 지나지 않으며 때로는 상처를 주는 일이다.

 

내가 옳다고 해서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꽃피어나게 할수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꽃을 피어나도록 돕는 것이지 그사람에게서 당신의 꽃이 피어나게 함을 의미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