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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상/나

지금 이자리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일상을 살기위해선 밥부터 잘 챙겨야한다.

석가모니는 불경을 설파하다가도 공양시간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걸식을 했다.

이렇게 기초적인 '식'을 해결하고는 다시 그가 있어야 할 자리로 어김없이 돌아왔다.

 

의식주가 해결이 되니 번뇌가 있을 수 없다. 속세의 노동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그것이 해당 될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장웨이농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매일 아침 밖에 나가 일을 하지만 필수적인 노동을하고

생계와 관련이 없는 일은 모두 생략 하고 퇴근하여 조용히 사색하고 마음을 들여다 보는것이

현대인의 수행이다. 

 

많은 사람이 생계 도모라는 쳇바퀴에 갇혀 살아간다. 일은 수단일 뿐인데 일이 목적이 되어버린다.

한국사회는 더더욱 그렇다. 회사에 틀어박혀 일만하다 건강을 잃고 가족간 유대를 잃고 결국은 회사에서도

버려진다. 이러한 문화를 오히려 국가에서 세뇌한 것일수도 있을거란 생각이든다. 기름 한방울 안나는 사회에서

또 인구수도 적은 우리나라가 살아 남으려면 질과 양이 받쳐주는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유년시절부터 경쟁이 필요하고 이는 입시제도로써 완성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요즘세대들은 다르다. 앞선세대의 선례로 어차피 일에 몰두해봤자 하나의 부속품이라는 사실을 목도했기때문에

그들은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려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어느정도 현재를 살라는 불가의 가르침과 

교집합인 부분이 있는것이다.

 

지금 현재를 살기위해서는 기다림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아야한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지금 이시간이 참기 힘들고 괴로워 진다.

그 기다림이 현재가 되는 순간 찾아오는 즐거움은 또다른 기다림으로 빠르게 대체된다. 마음은 결국 안정되지 못한다.

 

금강경 첫 부분에 묘사된 장면은 부처처럼 성불한 사람도 일상생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하루하루 일분 일초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성불하지 못한 우리는 이순간 이자리에서 본연의 마음을 지키며 현재를 살아야한다.